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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공감 어떤 양형 이유 도서의 책소개, 저자소개, 발췌문

by Phil_Lab 2023. 11. 6.

 

 

 

어떤 양형 이유

 

 

《어떤 양형 이유》에는 “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타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타인뿐이다” “우주상에 사람의 생명보다 귀중한 것은 있을 수 없다” 등 세상을 울린 실제 판결문에 실린 양형 이유와 법과 사회를 바라보는 박주영 판사의 따뜻한 시선이 담겨있는  시선을 알아보겠다.

 

 어떤 양형 이유 도서의 책소개

판결문 말미에 실리는 ‘양형(量刑) 이유’ 부분은 형벌의 양을 정한 이유에 대해 기술하는 곳이다. “마지막 물기 한 방울까지 짜내고 짜낸 메마른 문장”으로 가득한 냉혹한 판결문에서 그나마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판사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기도 하다. 박주영 판사는 오랫동안 형사재판을 하며 사건 당사자나 사회에 특별히 전하고 싶은 말이 있을 때 양형 이유를 공들여 적었다. “성범죄 관련 법규의 수범자인 우리가 성범죄, 특히 성적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항상 명심해야 할 명제는 간단하고 명료하다. 타인의 몸을 자유롭게 만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그 타인뿐이다.” 

 

“‘저녁 있는 삶’을 추구하는 이 시대 대한민국에서, ‘삶이 있는 저녁’을 걱정하는 노동자와 그 가족이 다수 존재한다는 현실은 서글프기 그지없다.”


저자가 쓴 판결문은 어느 순간부터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그가 쓴 양형 이유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 이야기> 등 방송에 나오고 여러 기사에 인용됐으며 권석천, 박웅현, 정문정 등 베스트셀러 작가들의 책에 언급됐다.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왔던 박주영 판사는 이런 판결문을 쓰는 이유에 대해 “참혹한 사건이 계속 일어나고 있으니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주려고 나름대로 몸부림을 친 결과”라고 말했다. 그의 몸부림은 세상을 조금 더 나은 쪽으로 바꾸고 있다.

법정은 무수한 희구와 간청이 끊임없이 몰아치는 곳이다. 판사는 법정을 찾은 모든 이에게 최대한 빠르고 명쾌한 답을 줘야 한다. 하지만 눈물과 고통으로 범벅된 기록들은 쉼 없이 쌓이고 기일표는 10~20분 단위로 잡혀 있다. 판사의 결정은 “수많은 우주를 비극으로 바꿔놓는 경우가 많”지만 사건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성의 있게 들을 시간은 없는 것이다. 그래서 판사는 목까지 찬 사건들 속에서도 올바른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중압감과 누군가에게 벌을 내려야만 한다는 비극 속에 산다.

“그들이 준비한 사연의 반의반도 못다 얘기했음을 알면서도, 뒤 사건으로 채근하며 8시쯤 겨우 사무실로 올라왔다. 창밖에는 눈이 계속 내리고 무거운 이야기들은 무겁게 법원을 다시 나선다. 충실히 듣겠노라 매번 다짐하지만 빽빽한 기일표를 보면 늘 한숨이다.”

《어떤 양형 이유》에는 판결문으로 내보일 수 없었던 판사들의 이면이 담겨 있다. 밤에도 휴일에도 사건 당사자들의 책망과 옹호 사이를 오가고, 일주일에 A4 4천 쪽 정도를 읽기 위해 루테인을 먹으며 눈을 부릅뜨고, 잘라버린 말의 무게에 짓눌려 어깨가 굽고, 법원 밖에서도 증거가 없으면 믿지 못하고, 밖에서 누군가 자신을 알아보면 경계부터 해야 하는 사람들. 판사의 일과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고 무거우며 처절하다.

존 마셜 할란(John Marshall Harlan) 대법관은 흑백 인종분리 교육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우리 헌법은 색맹이다”라고 말했다. 저자는 우리 헌법 역시 “모든 종류의 차별을 부인”하는 색맹이라며 “남성도, 여성도, 이성애자도, 부자도, 중산층도, 크리스천도, 불자도 아니”라고 말한다. 법이야말로 빈부와 성별과 성 정체성 등 어느 것에도 국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반 국민들에게 법은 주먹보다 멀고 어렵지만 “보편타당한 원리를 추구하는 사법은 본래 사람에 대한 깊은 이해와 관심을 그 바탕으로 한다.” 저자는 법의 집행자로서 이 사실을 잊지 않기 위해 세상과 인간에 대해 무지하다는 마음으로 매번 새롭게 배우고, 법이 사문화되지 않게끔 “삶의 현장과 소통”한다. 이런 마음을 품으려면 사람을 향한 깊은 사랑이 있어야 한다. 우리 모두를 통합할 수 있는 건 “언어가 아니라 사랑”이어서다.
비참한 현실과 인간의 고통이 철철 흐르는 저자의 판결문이 사람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주는 건 인간에 대한 연민과 깊은 애정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어떤 양형 이유》에 “법이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한 치 틀림없이 설명할 수 있다면, 법은 적어도 사랑에 기반하고, 사랑에 부역하는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고 썼다. 세상이 더 나은 쪽으로 나아가며 서로가 서로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이 되는 데 필요한 건 오직 사랑뿐이다.

 저자 박주영 소개

지방법원 부장판사. 성균관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고 7년간 변호사로 일하다 경력법관제도로 판사가 됐다. 지금은 지역법관제도가 폐지되어 지역법관이 아니지만 자의로 부산고등법원 관내에서 근무하고 있다. 10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부산지방법원, 울산지방법원, 대전지방법원 등에서 주로 형사재판을 했지만 부산가정법원에서 소년재판을 한 적도 있다. 언론을 상대하고 행정기획업무를 하는 공보기획판사도 세 번이나 했다. 공보기획판사로 일하며 인터뷰와 대외행사를 많이 했지만 실제로는 낯을 많이 가리고 소심하다. 읽고 보고 듣는 것을 좋아해 시간이 나면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음악을 듣는다. 유일하게 부리는 사치는 오디오 기기다. 소박한 진공관 앰프에 LP로 음악, 특히 재즈를 자주 듣는다. 빌리 할리데이와 쳇 베이커를 좋아한다. 2022년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했다. 지은 책으로 《어떤 양형 이유》와 《법정의 얼굴들》이 있다.

 발췌문

P. 22~23 아이들이 가장 예쁠 때가 항상 지금이듯, 사랑이 가장 필요한 때도 바로 지금이다. 지나간 사랑의 관성으로만 나아가는 가정은 오래 지속되지 못한다. 사랑이 소중한 것은 그 자체로 숭고하고 고결하기 때문이 아니다. 사랑은 실용적이어서 중요하다. 사랑은 무관심과 질시와 모욕과 폭력을 없애는 백신이나 해독제 같은 것이다.
P. 28~29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사회의 가정폭력에 대한 불개입 풍조는 극복되어야 한다. 가정은 사적 영역이므로 공권력 개입은 가급적 자제되어야 하고 신중해야 한다는 명제는, 그 가정이 가정으로서 최소한의 기능을 유지하고 있을 때에만 성립될 수 있는 것이다. 큰 사람이 작은 사람을 학대하고,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가 폭력으로 누군가에게 고통만을 안겨주고 있다면, 그곳에는 더 이상 가정이라 불리며 보호받을 사적 영역이 존재하지 않는다.폭력이 난무하는 곳보다 더한 공적 영역은 없다. 
P. 55 인간의 탐욕과 이기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파국이 어떤 모습인지 궁금하다면 법정으로 오면 된다. 사기 피해자들을 모아 피해 구제 모임을 만들면서 다시 이들을 상대로 사기를 치고, 검사를 사칭하다 구속된 사람의 아내를 상대로 CIA 한국지부 요원을 사칭하며 사기를 친다. 사기당했음을 깨달은 후 그 피해를 보상받고자 순차적으로 가해자가 되는 다단계 피라미드 사기는 탐욕과 이기심의 기막힌 변주다. 어떤 공무원은 뇌물로 받은 돈을 꼬박꼬박 모아 적금을 붓는다.  
P. 78 판사로서의 가정과 후회는 애틋하거나 처량하다기보다는 섬뜩하다. 내 결정이 수많은 우주를 비극으로 바꿔놓는 경우가 많아서다. 그때 그 피고인을 석방했더라면 그의 아내가 생활고로 자살하지 않았을 것이고 아이들도 뿔뿔이 흩어지지 않았을 텐데, 그때 그 피고인을 석방하지 않았더라면 추가적인 피살자도 없었을 텐데…. 후회로 남은 결정은 판사를 놓아주는 법이 없다. 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이자 지울 수 없는 화인이다.  
P. 103 위험을 외주화하고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하는 나라,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이 사망해도 원청업체의 이윤이 늘기만 하면 죽음도 기꺼이 용인하는 나라, 하루 평균 노동자 다섯 명의 죽음을 용인하며 이윤만을 추구하는 연 매출 수조 원의 대기업에 가해지는 형벌이 고작 벌금 1억 원이 전부인 이 나라에서,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옴에 가장 적확한 단어는 퇴근이나 귀가일 수 없다. 생환이다. 타인의 희생 위에 축조된 삶이 과연 행복할까. 위험을 외주화할 수 있다. 죽음도 하도급 줄 수 있다. 그러나 행복은 하청 줄 수 없다.
P. 123 왜 소수자를 보호해야 하냐고? 사실 이 질문은 처음부터 잘못됐다. 잎이 없고 피부가 없으면 유기체가 죽고, 암흑물질이 없으면 우주가 존재하지 않듯, 다수가 소수자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소수자가 그들을 보호한다. 아니, 그저 서로가 서로를 도우며 살아갈 뿐이다.
P. 159 보스턴 천주교 사제들의 아동 성추행을 보도한 <보스턴 글로브>의 실화를 옮긴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잘 알려진 대사다. “한 아이를 키우는 데 한 마을이 필요하듯, 한 아이를 학대하는 데도 한 마을이 필요하다.” 이 말은 소년범을 대할 때 반드시 잊지 말아야 할 말이다. 이 아이들이 모두 엄벌을 받아야 한다면, 아이들을 유기하고, 방치하고, 학대하고, 눈길조차 주지 않은 부모와 가족, 그 아이들 중 누군가와는 같은 마을 사람들인 우리도 함께 엄벌을 받아야 한다.  
P. 273 소동파의 시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인자함은 지나쳐도 화가되지 않지만 정의로움은 지나치면 잔인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