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고 싶어 하는 소녀 이치노세 쓰키미와 사신에게 수명을 팔아넘긴 대가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은시계를 얻은 남자 아이바 준, 두 사람이 펼쳐내는 삶과 죽음, 과거와 현재를 넘나드는 시공초월 로맨스. 스스로 수명을 포기하고 3년 시한부 인생을 선택한 아이바 준과 계속해서 자살을 시도하는 이치노세 쓰키미의 이야기는 우리가 보통 끝이라고 생각하는 ‘죽음’에서 시작해 점차 ‘삶’으로 나아가는 독특한 이야기 구조로 독자들에게 신선한 재미를 선사할 뿐 아니라 사랑과 삶의 의미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하는 묵직한 여운 또한 남길 것이다.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 도서의 책소개
학교 폭력에 시달리다 등교 거부를 한 이치노세는 엄마의 재혼으로 생긴 새아버지, 새언니들과도 갈등을 빚으며 지독한 외로움을 느낀다. 살아야 할 의미를 찾지 못한 채 고독하게 살아가는 그녀의 모습은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려져 보육원에서 자라다 입양을 갔으나 새로운 가정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외롭게 살아가는 아이바의 모습과 닮아 있다. 그렇기 때문일까. 아이바는 이치노세와 점점 가까워지며 그녀의 속마음을 알아갈수록 자살을 막는 데 필사적이 되어가고, 소설을 읽는 독자들 역시 시간을 되돌릴 타이밍을 놓쳐 아이바가 이치노세의 자살을 막지 못하게 되면 어떡하나 초조한 마음으로 지켜보는 한편, ‘죽고 싶다’는 소녀의 강한 마음이 ‘죽기 두렵다’, ‘살고 싶다’로 변화하는 과정을 힘껏 응원하게 된다. 키가 크고 가녀리지만 알고 보면 장난기 많고 내면은 단단한 이치노세와 조금은 무뚝뚝하고 겉으론 강한 척하지만 속은 여리고 다정한 아이바. 두 사람이 만나 티격태격 싸우고, 웃고, 함께 절망했다 다시 일어서는 이야기가 영화관, 게임센터, 아쿠아리움, 공원, 수영장, 축제 등 청춘들의 대표적인 데이트코스를 배경으로 달콤하게 그려지며 독자들에게 웃음과 눈물과 설렘과 감동이 있는 한 편의 청춘 영화를 선사한다.
저자 세이카 료겐 소개
세이카 료겐은 도쿄에 거주한다. 2020년 《어느 날, 내 죽음에 네가 들어왔다》로 제8회 인터넷소설 대상을 수상하고, 2021년 이 작품으로 데뷔했다. 사신(死神), 과거로 시간을 되돌릴 수 있는 은시계 등 판타지한 설정으로 독자들의 시선을 확 잡아끄는 이 소설은 가정불화 및 학교 폭력 같은 현실적인 고민, 점점 사랑으로 발전해가는 두 주인공의 감정선과 알콩달콩한 데이트 장면, ‘죽고 싶을 만큼 괴로운 삶’이 ‘너로 인해 살고 싶은 삶’으로 바뀌어가는 과정을 매우 설득력 있게 그리며 누구나 빠져들어 읽을 수밖에 없는 작품을 탄생시켰다. 이를 입증하듯 일본 인터넷소설 투고 사이트인 〈소설가가 되자〉에서 2019년 2월 연애 분야 일간 1위에 올랐을 뿐 아니라 독자들의 열렬한 응원에 힘입어 단행본 출간, 현재 만화로도 제작되어 그 인기를 이어가고 있다.
발췌문
“곧 죽을 수 있었는데.” 이치노세는 팔을 붙잡힌 채 삐친 듯이 말했다. 아니, 분명 삐쳐 있다. 그녀가 또렷하고 커다란 눈동자로 노려보았지만 무섭기는커녕, 나를 올려다보는 눈이 오히려 귀엽기만 하다. “이제 그만 자살을 포기할 생각은 안 드나?” 내 말에 이치노세는 질린다는 표정이다. 16쪽. 낯선 여자가 말을 걸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아이바 준 씨. 당신의 수명을 제게 넘겨주시겠어요?” 온몸에 검은 옷을 걸친 께름칙한 여자였다. 키가 크고 놀랄 정도로 말랐다. 긴 은발 머리는 이 세상 사람의 것이 아닌 듯 아름다웠으나 그 감동을 다 덮어버릴 만큼 섬뜩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26쪽. 한참을 내려다보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중학생으로 보이는 소녀 네 명이 걸어왔다. 처음에는 자살한 소녀의 반 친구들이 추도하러 온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네 소녀는 몹시 즐거운 얼굴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고 자살 현장을 찍기 시작했다. “드디어 사라져줬네”, “이제 두 번 다시 걔 얼굴 안 봐도 되겠어”라고 떠들며 소녀의 자살을 기뻐하는 그들의 대화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
나는 난간을 쥔 손에 점점 더 힘을 주면서 그 애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 45쪽. 이런 상황에서 심신이 피폐해진 이치노세가 무심코 내뱉은 말이 “죽고 싶어”였다. 하지만 아무도 동정하지 않았다. 의붓아버지는 “그런 소리 할 거면 지금 당장 죽어버려!”라고 고함쳤고 언니들은 “비련의 여주인공 납셨네!”라며 욕을 퍼부었다. 어머니는 보고도 모르는 척했다. 식구들과의 관계를 다 털어놓은 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치노세에게 물었다. “자살하려고 한 건 식구들에게 ‘자살할 용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선가? 만약 그렇다면 그런 사람들 때문에 자살하는 건 너무 아까운데.” 77쪽. 어마어마한 정어리 떼를 보며 문득 생각했다. 저렇게 많이 모여 있으면 따돌림당하는 정어리도 있지 않을까. 만약 질투도, 괴롭힘도 없다면 나도, 이치노세도 인간으로 사느니 차라리 정어리로 태어나는 게 더 행복했을지 모른다. 117쪽. “네, 시간을 되돌리면 실패를 없었던 일로 할 수 있으니까요. 소심하고 소극적이었던 사람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게 되니까 그 기세로 무슨 일이든 잘해나갑니다. 자신감이 붙으니 주위 사람들도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대해주고요. 그러면 깨닫는 겁니다. ‘조금만 달라져도 살아갈 수 있었겠구나’ 하고 후회하면서 말이죠.” 146쪽. “그게 아니라……, 왜 내가 살아 있길 바라는지, 그게 궁금해요.” 말문이 막혔다. 대답이 나오지 않아서가 아니다. 최근 한 달 동안 그녀와 지내면서 명분과 본심이 뒤바뀌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나도 몰라”라고 짐짓 모르는 척하며 얼버무렸다. 지금의 관계를 1초라도 더 지속하고 싶으니까. “…모르면서 지금까지 자살을 방해한 거예요?” “뭔가 이유가 있을지도 모르지.” 남의 일처럼 대답하자 이치노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13쪽. ‘살아 있으면 언젠가 좋은 일이 생길 거야’ 같은 말은 얼마나 무책임한 위로인가. 예전부터 내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 나 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 말로 그녀를 위로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 그녀를 이해해줄 사람이 나타날지 모른다. 우리가 만났듯이, 살아 있으면, 반드시. 240쪽. 하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던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니 불꽃을 보지않고 아이나 연인의 옆얼굴을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하늘을 올려다보는 것만이 불꽃놀이를 즐기는 방법이 아니라는 걸 처음 알았다. 이치노세의 눈동자 속에서 빛나는 불꽃을 바라보며 나는 그 사실을 깨달았다. 246쪽. 나비가 그녀의 주위를 날아다니는 광경은 무척 신비로워 보였다. 그러고 보니 사신은 우리를 ‘날개 없는 나비’에 비유했지. 하지만 지금의 이치노세는 더 이상 날개 없는 나비가 아니다. 확실히 앞으로도 달라질 것이다.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시야가 넓어지면 눈앞에 있는 그녀도 달라질 게 분명하다. 내게 품고 있는 마음과 함께. 이제 내가 없어도 그녀는 혼자 어디까지든 날아갈 수 있다. 29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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