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 뒤 연구로 밝혀진 나치스의 정치 선전선동 방식을 저자 추영현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동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시점으로 소개하면서 고찰하는 비평 형식을 따랐다. 때문에 나치스의 선전선동이 정치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대중이 거기에 매료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괴벨스 프로파간다 도서의 책소개
파울 요제프 괴벨스(Paul Joseph Goebbels)는 히틀러 나치 정권 선전을 담당해 크게 활약한 인물이다. 그는 독일 나치스 정권의 국가대중계몽선전장관 자리에 앉아 새 선전수단 구사, 교묘한 선동정치로 1930년대 당세 확장에 크게 기여했으며 나치 선전 및 미화를 책임졌다. 독일 국민들이 나치 정권을 호의적으로 받아들이게 된 까닭은 괴벨스의 선전선동 때문인 것으로 여겨진다. 괴벨스는 다리가 굽었기 때문에 제1차 세계대전 때 병역을 면제받았는데, 이는 그에게 강렬한 보상심리를 유발함으로써 그의 인생을 불운하게 몰아가는 불씨가 되었다. 괴벨스는 하이델베르크대학에서 독일문헌학으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뒤 문학·연극·언론계에서 활동했는데, 히틀러가 베를린지구당 위원장에 임명하면서 나치당에 입당했다. 이윽고 그는 국가선전기구를 장악하고 나치 프로파간다의 거의 모든 것을 만들어 낸다. 히틀러 시대와 나치 프로파간다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괴벨스를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나치스를 광신적인 정치집단이라고 생각한다. 비정상적인 정치사상이 교묘한 선전으로 퍼진 결과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치스는 절대 선전집단이다. 대중이 가장 잘 받아들일 만한 소재를 정치사상으로 선택한 집단이라는 의미이다. 광신적인 정치집단이 대중을 억지로 끌고 다닌 것이 아니다. 절대 선전집단이 대중의 내재된 욕망을 철저하게 증폭시킨 것이다. 그 과정은 어땠는지,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지, 이 책은 괴벨스 나치 프로파간다라는 그 큰 물줄기를 분석한다. 대중사회와 민주주의가 합쳐진 사회가 이어지는 한 이 책이 언급한 내용들은 결코 빛바래지 않는다. 나치스를 주제로 서술한 내용은 오늘날에도 세상 곳곳에서 펼쳐지는 일이기 때문이다.
보통 ‘나치 프로파간다’란 나치스라는 정당의 프로파간다를 말한다. 당의 선전이다. 정당이니 물론 정치 목적이 있을 것이다. 정당에 속한 정치가에게는 무언가 분명 정치적인 신념이 있다. 정책을 갖고 있다. 이런 것들이 실질적으로 정치를 구성한다. 그 실질적인 요소를 지지받기 위해 정치 선전을 한다. 선전은 정치의 도구이자 수단이다. 나치스 프로파간다는 선전의 절대성을 나타낸다. 즉 나치스는 정당으로서 실현하고 싶은 정치 내용을 먼저 지니고 있으며 이를 선전하고 싶은 집단으로는 보기 어렵다는 판단이 이 책의 대전제이다. 그들에게는 선전이 먼저였다. 나치스의 선전은 정치를 위한 기술이 아니다. 정치는 선전을 완수하기 위한 상대적인 도구였다. 선전하면 반드시 압도적인 효과가 나타나 엄청난 인기를 끌 내용, 이를 찾아서 정당의 사상이나 정책으로 삼았다. 괴벨스는 효과적인 선전을 위해 정치 내용을 선택했다. 정치가 먼저가 아니라 선전선동이 먼저였다. 그것이 나치스의 정체다.
히틀러가 정권을 잡은 것은 1933년, 제3제국이라 부른 나치스 체제가 무너진 것은 1945년, 겨우 12년 세월이었다. 그 사이 아우슈비츠를 비롯해 광기에 휩싸인 무시무시한 현실이 있었다. 그 체제의 핵심 기능을 수행한 것을 이 책에서는 선전이라는 이름으로 요약했다. 괴벨스를 시작으로 하는 선전형 인간 집단이 마음대로 국민을 조종했다. 그렇지만 위대한 사상가와 시인의 나라 백성이었던 사람들이 어째서 그토록 잔인한 사형집행인과 재판관 나라의 국민으로 전락하고 말았을까? 어떻게 순순히 나치스의 신앙 체제에 편입되었을까? 심리적으로도 사회적으로도 까다로운 문제가 많아 나치스 연구에서는 저마다의 사례 하나하나는 몰라도 총체적으로 선전을 살펴보는 일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이 책이 흥미를 끄는 이유는 나치스의 뛰어난 선전 전략과 수사학을 만날 수 있는 한편, 아주 가까운 인간을 인식하는 방법과도 깊은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시대와 나라는 달라도 누구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작은 괴벨스, 작은 히틀러와 만났거나 지금도 마주보고 있다.
대중은 선동정치 유언비어를 더 좋아한다!
나치스 선전=프로파간다라는 말을 들으면 우리는 바로 하켄크로이츠라는 독특한 심벌, 통일된 제복 디자인, 선거 슬로건이나 깃발, 당 대회에서 장엄한 행진이나 서치라이트, 화톳불을 절묘하게 이용한 아름다운 행렬, 히틀러의 매력적인 연설과 몸짓 그리고 알베르트 슈페어의 체펠린 비행장 같이 장엄한 건축물 등이 떠오른다. 우리는 나치스가 정치를 볼거리 가득한 예술로 만드는 데 성공한 정치 운동이라는 인상을 강하게 갖고 있다. 때문에 괴벨스의 일기를 하나의 선전으로 보는 이 책의 관점은 기존 관점과는 또 다른 흥미진진 재미를 느끼게 한다. 이 책의 독특한 시점은 선전을 단순한 볼거리로 보지 않고 공허한 정치운동의 자기 확대로 읽어야만 흥미 깊게 이해할 수 있다.
인간의 심연 그 깊은 곳을 탐구하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공허한 정치 선전이 성공적으로 확대해 간 체계만이 아니라 그런 선전의 자기 확대 기능이 균형을 잃고 움직임을 멈추는 순간을 표현하고자 했다. 대중들은 아무리 정부가 선전으로 정보를 통제하더라도 자신들의 불안과 희망에서 유언비어를 퍼뜨리고 정부의 선전을 무효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을 지닌 존재이다. 세계대전이 끝난 뒤 히틀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유언비어가 곳곳에서 생겨나고 반대로 전쟁 중에 히틀러가 죽었다는 유언비어도 나타났는데 이 책은 그러한 유언비어가 나치스의 선전을 흔든 체계를 분석한다. 선전의 힘으로 커진 공허한 정치운동은 또 선전의 힘으로 그 공허함을 드러냈다. 선전은 반드시 절대가 아니다.
나치스의 행동이 유별난 것일까? 아니, 이상하기는커녕 민주주의 정치에서는 매우 마땅한, 지나치게 순수하리만치 정상적인 행보를 응축할 수 있는 한 응축했다. 정치 민주화가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선거권은 확대된다. 정치가 대중화된다. 국정에 참여하려면 선거에서 이겨야만 한다. 선거에 이긴다는 말은 대중의 지지를 모았다는 뜻이다. 대중을 동원하지 않고 정권은 잡을 수가 없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이 대중이 얼마나 정치를 이해하느냐와 대중의 교육 수준이다. 그런데 대중에게는 복잡한 정치가 잘 보이지 않는다. 대중의 지지를 얻으려면 정치는 알기 쉬워야 한다. 대중에게 호소하고 선전하기 쉬운 정책 카드를 많이 제시하면 선거에 이길 수 있다. 선전하기 쉬운 정책이란 그 시절에 받아들이기 쉬운 정책이다. 받아들이기 쉬운 정책이란 정치가가 생각하는 이상(理想)보다 마케팅에서 나온다. 해당 시기에 선전효과가 큰 정치 내용이나 정치 이야기를 정책으로 선택하면 권력을 잡을 수 있다. 정치를 위한 선전에서 선전을 위한 정치로. 사실 그 항로는 나치스만이 걸어 온 기이한 항로가 아니다. 근대 민주주의의 추세가 만들어냈으며 오늘날 세계에서도 많건 적건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이 항로를 아주 충실하게 따라온 대표적인 예가 나치스였을 뿐이다. 나치 프로파간다는 민주주의 정치가 이르는 하나의 결말이다. 그 골을 향해 나치스는 국민주의와 사회주의, 유대인 배척이라는 세 장의 카드를 억지로 묶어서 재빠르게 가장 먼저 달려간 것이다.
《괴벨스 프로파간다》는 괴벨스와 히틀러의 선전 전략사상을 설명한 뒤에 그들이 나와 우리를 어떻게 나눠서 사용했는지, 외부를 믿게 만들기 위해 내부를 세뇌해 둬야만 하는 순서와 프로파간다를 어떻게 조직했는지, 정치와 선전 기술을 일치시키는 일을 어떻게 시작했는지 이런 문제를 명확하게 기술했다. 히틀러와 괴벨스의 선전 전략은 그 뒤 차례차례 부드럽고 민주적으로 많이 개량되었지만 그 골자는 거의 그대로 현대 미디어 사회에서 당연하게 여기는 상투적 수단으로 쓰이고 있다. 이 책은 나치스 정치를 프로파간다=선전이라는 시점으로 파악하고 그들이 만들어 낸 제복이나 행진, 당 대회, 연설, 방송, 영화 같이 다양한 정치 문화 현상이 얼마나 그 시대 사람들을 끌어당겼느냐는 점에서 주목한다.
이 책은 2차 세계대전 뒤 연구로 밝혀진 나치스의 정치 선전선동 방식을 저자 추영현이 다양한 자료를 활용해 동시대 사람들의 생생한 시점으로 소개하면서 고찰하는 비평 형식을 따랐다. 때문에 나치스의 선전선동이 정치에서 효과를 발휘하고 대중이 거기에 매료된 그 시대의 분위기를 생생하고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고 있다. 독자는 이 책을 읽으며 20세기 시작 무렵 나치 프로파간다를 제대로 읽음으로써 오늘날 선전선동의 의미를 되짚어 볼 수 있다. 또한 나치 프로파간다의 허상을 깨달음과 동시에 현대의 여론 조작 및 다양한 군중집회 등 선전선동에 자신도 모르게 휘둘릴 때 민주주의가 어떻게 위기를 맞이하는지 그 진실을 마주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파울 요제프 괴벨스, 역자 추영현 소개
파울 요제프 괴벨스 (지은이)
나치 독일의 선전장관. 국회의원, 당 선전부장을 지냈다. 타고난 언변과 탁월한 문장력으로 대중을 집단 최면 상태에 빠트린 희대의 정치 연출가였다. 왜소한 체구에다 어려서 골수염을 앓아 한쪽 다리를 절었던 괴벨스는 열등감을 극복하기 위해 학업에 몰두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에서 독일 문헌학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 이후 은행원, 저널리스트로 일하면서 반자전적 소설 《미하엘》을 비롯해 몇 편의 작품을 썼다. 1925년 나치스에 입당하고, 그해 히틀러를 만나 충성을 맹세한다. 1933년 수상에 지명된 히틀러는 괴벨스를 선전장관 겸 문화원장에 임명한다. 괴벨스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을 선전 수단으로 이용해 독일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다. 1945년 5월 1일 베를린 총리 관저의 벙커 안에서 아내와 6명의 아이들과 함께 동반 자살했다. 히틀러가 자살한 다음 날이었다.
추영현 (옮긴이)
1930년 해남에서 태어나다. 1955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서울신문학원 졸업. 조선일보·한국일보·경향신문 기자로 활동. 1964년 반공법 위반 1년 징역 2년 집행유예로 성탄 전야 가석방. 1974년 한국일보 재직 중 대통령 긴급조치 1,4호 위반, 군법회의 15년 징역형. 1978년 8·15 특별 가석방. 명동성당 가톨릭교회사 편집위원 한국가톨릭대사전 편집장. 2008년 대통령 긴급조치 위반 재심청구, 대법원에서 반공법 등 무죄 확정. 옮긴책 로크 《인간지성론》 베네딕트 《국화와 칼》 스피노자 《에티카》 《정치론》 등이 있다.
발췌문
P. 40
제1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독일에서, 또 세계 대공황으로 실업자가 넘치는 사회에서 나치스의 흥성(興盛)은 시대의 흐름 속에서 필연이었다고 할 만큼 역사는 단순하지 않다. 뚜렷하지 않은 부분을 조명하려면 나치당이 활동적일 때 그 이전의 시대와 함께 나치스 말고 다른 정치적 세력을 시야에 넣고, 더 나아가 히틀러 개인의 인격과 사상 또한 고려한 다음, 그 선전을, 그리고 나치스의 사상과 행동을 다시 점검할 필요가 있다.
나치즘은 독일어로 Nationalsozialismus이다. 국가사회주의, 국민사회주의, 민족사회주의 등으로 번역된다. 문제는 National을 어떻게 해석하는가인데 어학적으로는 모두 가능하다. 그러나 이것은 민족사회주의라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 나치즘이 독일 국가도 독일 국민도 아닌 독일 민족의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P. 107
이렇게 해서 제3제국은 붕괴했는데 지금도 나치스 제3제국의 초기는 독일 번영의 시대였다고 평가한다. 나치당은 압도적 다수인 독일국민의 지지를 얻어 합법적으로 정책을 확립했다. 히틀러도 전쟁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일류의 정치가였다, 독일에는 여전히 최고 수준의 기술로 신무기를 만들어냈다는 등 다양한 나치 프로파간다 신화가 남아 있다.
P. 170~171
1934년 9월 4일부터 10일에 걸쳐서 개최된 뉘른베르크 제6회 전국당대회 ‘의지(意志)’는 치밀하게 준비되었다. 체펠린펠트에는 28세의 건축가 알베르트 슈페어가 전장 440미터, 높이 27미터의 석조로 된 회의장을 건설했다. 130기의 대공 탐조등을 배치하고 야간집회에서 빛의 신전을 연출했다. 또 32세의 여성 영화감독 레니 리펜슈탈이 카메라맨 16명 말고도 200명의 제작진을 이끌고 대회 2주 전부터 당 선전영화를 제작했다. 레니의 《회상》에 의하면 1932년 2월, 베를린 스포츠궁전에서 히틀러의 연설이 시작된 순간, 땅이 갈라져 물이 치솟고 흔들리는 것 같은 환영을 보았다고 한다. 히틀러를 숭배하는 레니는 히틀러에게 접근해 계몽선전장관 괴벨스로부터 지원을 받을 수가 있었다. 레니의 영화 《의지의 승리》는 1935년 베네치아 비엔날레에서 금메달, 1937년 파리 세계 박람회에서 그랑프리를 획득했다.
P. 197
점령지의 소련 주민은 그때까지 스탈린의 독재, 공산당의 압제 아래 있었기 때문에 독일군을 해방자로 환영한 이들도 있었다. 독일군이 우크라이나인, 러시아인, 체첸인 등에게 자치를 허용하면 제1차 세계대전 때와 마찬가지로 독일의 괴뢰국을 만들 수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독일군은 점령지의 슬라브인(폴란드인, 러시아인 등)을 열등민족 또는 하등인종으로 간주해 식료, 자원 에너지를 약탈했다. 이 가혹한 점령정책이 주민을 독일에 맞서는 파괴공작, 저항운동으로 향하게 했기 때문에, 오히려 스탈린은 독일점령지에서 빨치산이나 그 지원자를 얻을 수가 있었다.
P. 230
독일국민은 배상지불, 군비제한을 정하는 베르사유조약의 속박에 굴욕과 고통을 느꼈다. 더욱이 세계대공황으로 인해 생활이 곤궁했기 때문에 바이마르공화국의 의회민주주의가 무력하다고 실망했다. 이때 절대적인 권력을 지닌 지도자 아돌프 히틀러가 이끈 나치당이 베르사유조약, 바이마르공화국을 분쇄하고 새로운 독일을 부흥시킬 것을 주장하자 국민들은 기대를 걸게 되었다. 다른 한편, 보수적인 정치가들과 재계 인사들은 권위와 자금 모두 가지고 있었지만, 대중의 지지가 없어서 대공황에 뒤따르는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두려워한 나머지, 공산당 탄압을 주장하는 나치당을 이용했다. 대중 선동자 히틀러를 수상으로 내세워 그 배후에서 조종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국민 반수 남짓한 지지 가운데 나치당 히틀러는 보수정치가와 재계인사의 정치거래에 의해 수상에 취임할 수 있었다.
P. 241
화상 등 미디어가 제공하는 정보를 평가하고 식별해 활용하는 능력을 ‘미디어 리터러시(Media Literacy)’라고 하는데, 이에 입각해 정보 매개수단의 관리자의 의도를 알 필요가 있다. 프로파간다에서 흘러나오는 정보가 사실과 일치하지 않는 경우, 사실에 근거해 그것을 강조하고 특정 견해를 선전, 많은 정보를 비판적으로 검토하는 능력이 미디어 리터러시이다. 그러나 프로파간다는 미디어 리터러시에 맞서기 위해 권력과 권위만이 아니고 폭력과 테러를 병용한다. 나치 프로파간다는 당국이 사고와 여론을 유도하기 위한 정보 관리로써, 전시에는 정보전과 심리전으로 확대되었는데, 보도관리에 의해 정면으로 비판을 드러내는 일은 없고, 비판이 발각되면 체포, 처벌되었다.
P. 242
프로파간다는 송신자에게 유리한 정보는 한층 크게, 불리한 정보는 더욱 작게, 동시에 적대자에게 유리한 정보는 작게, 불리한 정보는 크고 떠들썩하게 선전하는 행위이다. 그리고 전달하는 정보의 신빙성을 확보하기 위해 송신자가 취사선택한 진실에 거짓이 뒤섞여 있다. 즉 나치는 광범위한 정보를 보유했는데, 기밀정보는 명확히 하지 않고 한정된 정보만을 송신자에게 전달했다. 그 때문에 송신자와 수신자 사이에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했다.
P. 303
한때, 모택동 사망 유언비어가 떠돌았었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죽으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사람, 죽으면 어떻게 될까 호기심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유언비어를 믿었다. 그리고 그 유언비어가 안팎에 미치는 영향을 생각해 유언비어 깨부수기 공작이 행해졌다. 그 공작 결과, 모택동이 살아 있다고 생각하게 하기보다 오히려 정말 살아 있는지 의혹을 키우는 일이 더 많았다. 수영하는 건강한 모택동 사진을 발표해도 사람들은 가짜라고 생각하고, 닉슨과 대담하더라도 가짜라고만 생각했다. 한번 믿어버린 사람들에게 손쓸 방법이 없었다.
P. 315
한번 생겨난 유언비어에 수습하기 어렵다는 원칙이 성립할 수 있는 이유는 괴벨스가 말했듯이 ‘소문은 우리가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나치스 선전이 유언비어를 가장 큰 무기로 삼은 것만을 뜻하지 않으며, 괴벨스가 말하는 ‘우리’란 나치스를 가리킬 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일용할 양식’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P. 327
행진은 연출이다. 질서 정연함을 연출한다. 혼란이 인간을 바보로 만들 듯이 질서 정연함도 인간의 머리를 동굴처럼 텅 비게 만든다. 그렇다면 이 두 가지 방법은 저마다 다르다고 하더라도 사람의 마음을 상실시킨다는 점에서는 같다.
P. 346
정치선전은 사람들이 자신의 혈통이나 자신의 앞날에 대해 가진 몽상이나 행운을 갈망하는 것을 교묘한 말로 붙잡았다. 정치선전은 신화를 그들의 양식으로 삼는 대신 신화를 다시 확장해 나갔는데, 그 신화의 힘을 빌린 정치선전은, 각성상태에서는 인간이 일부러 손을 대지 않고, 손을 뻗지도 못하는 상대에게 욕망이나 증오를 꿈에서처럼 우스울 만큼 가깝게 끌어들였다. 이런 종류의 몽상은 반드시 불건전한 것이 아니다. 살아있는 온갖 민중들은 그런 몽상을 품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교묘한 마키아벨리즘에 부추김 받아 악몽으로 뒤바뀐다.
P. 384
선언은 많은 것을 이룰 수 있다. 선전은 체제를 포장할 수 있다. 선전은 염료이다. 그러나 사실을 거꾸로 뒤집으면 적을 돕는 일이 된다. 그렇게 되면 민중이 말하듯이 프로파간다가 ‘안티간다’가 된다. 그것은 중환자에게 의사를 데려오는 대신 중환자의 얼굴에 화장을 하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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